9월의 바람은 제법 차가웠다. 전날부터 내리던 비는 그친 지 오래였지만 흙은 아직 그 습기를 온전히 털어내지 못한 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하늘은 머지않아 비가 다시 올 것을 예고하듯 쥐색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비가 온 탓에 날씨가 제법 추워진 걸 몰랐던 아바키오가 옷깃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찬 기운에 몸을 옅게 떨었다. 비가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기온이 이토록 급격히 떨어졌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게다가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더 쌀쌀했다. 걸칠 거라도 챙겨올 걸 작게 중얼거리는 입에서 옅은 입김이 피어올랐다가 금세 허공으로 사라졌다. 올해 9월은 다른 해보다 유독 더 성급하게 추위가 시작됐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아 사람들이 여름의 잔열에 시달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당장 본인 뺨에 스치는 바람만 해도 여름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을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추위가 들이닥치자 사람들은 서둘러 겨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시기를 앞당겨 입은 두꺼운 외투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갔다. 아바키오는 그런 세상의 부산스러움과는 한참 동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아바키오가 멍하니 주변 광경을 둘러봤다. 줄지어 선 묘지의 낮은 지대에는 안개가 얕게 깔려 있었다. 어디에서도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바키오는 일부러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대에 이곳을 찾곤 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구두 밑에서 젖은 자갈이 작게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작은 발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들릴 만큼 이곳의 아침은 무서우리만치 적막하고 차갑다.
“꽤 오랜만이지...”
마침내 익숙한 이름이 새겨진 자리 앞에 멈췄다. 전날 내린 비가 제법 거셌던 모양인지 이름이 새겨져 움푹 파인 곳에도 물방울이 군데군데 고여 있었다. 아바키오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그 위를 슥슥 털어냈다. 돌의 거친 감촉과 함께 물기가 옆으로 밀려났다. 그리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들르는 편이었다. 묘비를 찾아 갈 때마다 빈손으로 가기엔 영 꺼림직해 이번에도 푸른 장미를 사왔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푸른 장미를 선물 받았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 큰 이유였다. 정작 그가 선물을 받고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속으로는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부차라티라면 싫어하는 내색을 굳이 드러내지 않았을 테니까. 푸른 장미의 꽃잎은 깊은 색을 머금은 채 서로 포개져 있었다. 그 꽃잎에는 어떤 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묘한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바키오가 무릎을 굽혀 묘비 앞에 준비해둔 꽃을 내려놓았다. 쓸쓸해 보이는 묘비에 새파란 색채가 불쑥 놓이자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가 꽃을 올려놓은 묘비에는 브루노 부차라티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5년 전 아바키오는 자신의 팀의 리더를 잃었다. 그와 함께 있었던 시간들은 길다고 할 수 없었으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서서히 그에게 구원받은 마음이 다시 돋아났다. 그것은 구원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고 불확실한 것들이었다. 다만 그가 곁에 있는 동안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한구석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전과는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어도 작은 희망을 붙들고 살아 있다 보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부차라티가 죽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는 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마음의 싹마저 뿌리째 뽑혀 나간 듯했다. 그가 죽은 후 천천히 돋아나려는 마음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시들었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모습만큼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모든 행동에서 목적이 사라졌다. 하루가 끝나도 내일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아바키오의 시간은 어느 한순간에 발이 묶인 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어가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죽은 자들의 빈자리를 받아들였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만은 모든 것이 그날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아바키오는 가끔 먼저 떠난 사람들이 생각날 때면 자신이 가장 비참하고 잔인하게 죽길 바랐다. 본인의 손으로 죽기엔 너무나 쉬운 방법 같았다. 그저 본인이 저지른 죗값의 고통을 느끼며 모두에게 천대받는 죽음을 염원하였다. 그렇기에 가장 만족스러운 죽음을 가정해두고 사는 생활이 정상적일 리가 없었다. 한때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슬픔이 이제는 삶의 일부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아무런 변화 없이 같은 자리에 고여 있었기에 더 이상 감정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운 어떤 상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끔은 조직도, 팀도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그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간다는 게 역겹게 느껴졌다. 아바키오는 긴 세월 동안 처음과 똑같은 수치로 비정상적인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부차라티가 존재했던 시간들은 분명 현실이었지만 이제 그 시간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현재와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과거가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부차라티의 죽음은 지나간 사건이었으나 아바키오에게는 단 한 번도 완전히 지나간 적 없는 현재이자 미래였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오직 자신만이 같은 자리에 남겨진 듯한 감각.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사실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세상은 변해가고 있는데 너와 나만 이곳에서 멈춰버린 것 같다.
거센 바람이 불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이 허공에 휘날렸다. 묘비에 놓여진 푸른 꽃잎이 하나둘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바키오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 ⁕ ⁕
“흐억...”
저녁까지 술을 마시고 한참을 뒤척이다 잠에 들었는데 얼마 안 돼서 악몽 때문에 다시 눈을 떴다. 무슨 꿈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을 때는 턱 끝까지 올라온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욱신거렸고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부차라티의 묘비에 방문한 날이면 계속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이지만 이제는 이 정도의 괴로움쯤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것은 죄를 잊지 않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 되어가고 있었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악몽을 꾸었을 때 누군가 속삭이던 기억의 파편을 다시 되새겼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꿈에서 다른 기억들은 모조리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한마디는 이상할 정도로 선명했다. 아바키오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되뇌었다. 그래. 절대 잊지 않으리라. 앞으로 평생 해야 할 숙제가 있다면 그건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잊지 않는 것. 잊지 않는다는 것은 곧 벌을 받는 일이며 그 벌을 삼켜내는 것이야말로 이승에 남겨진 자신이 치러야 할 죗값이라고 믿었다. 다시 눈을 감자 아침에 보았던 묘비가 떠올랐다. 손가락으로 문질러 닦아냈던 차가운 돌의 표면. 그 앞에 내려놓은 새파란 장미. 그리고 그 이름... 아바키오가 몸을 일으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얼굴을 쓸어내렸다. 거실로 나가 물이라도 한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일어났구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너무나 오래전에 들었던 목소리였으나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채 그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심장이 지나칠 정도로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다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보고 있었다. 아바키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가를 바라보았다. 흰 새벽빛이 스며드는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 얼굴을 알아보는 데에는 기억을 더듬을 필요조차 없었다. 오히려 알아보지 못하는 쪽이 더 이상했다. 아바키오는 눈앞에 있는 그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는 지금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으니.
“아바키오”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떨리는 손으로 협탁에 놓여 있던 재떨이를 집어 창가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 쾅 소리를 내며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그곳에 앉아 있던 남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아바키오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 헛것이야”
“커피.”
한 번 더 그의 선명한 음성이 들렸다. 그 목소리는 지나치게 선명했다. 기억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해 들었던 목소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환각이라면 이렇게까지 정교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은 자의 목소리란 원래 이토록 생생한 것인가. 아바키오는 그가 가리킨 테이블 위를 바라봤다. 하얀 머그잔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제 앞에 서 있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파랗다. 어둠 속에서도 이상할 만큼 투명하고 새파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바키오는 그 눈을 알고 있었다. 수없이 마주했던 눈이었고 한때 그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던 눈이었다. 시선을 피하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의 푸른 눈동자는 아름다웠다.
도망치듯 등을 돌려 침대에 누웠지만 창가의 의자가 자꾸 떠올랐다. 눈을 오래 감았다 천천히 뜨는 것을 반복했다. 등을 돌리고 있지만 인기척이 계속 느껴진다. 그렇다고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은 어쩐지 패배를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환각이 아니라면 귀신일 확률이 높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세상에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좀처럼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났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버젓이 현실이 되는 것을 이미 여러 번 목격했으니 이제 와서 죽은 자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이치를 의심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그쪽이 훨씬 간편했다. 문제는 그가 왜 나타났느냐는 것이었다.
이승에 미련을 가질 만한 사람이었을까. 자신이 아는 한 부차라티는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죽은 뒤에도 세상에 남아 떠돌 만큼 미련을 품고 있을 사람이라면 애초에 살아 있을 때부터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거슬리는 것은 부차라티의 태도였다. 마치 어제도 같은 방에서 마주쳤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내 이름을 부르고 커피를 권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광경만 보고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살아 있었을 때도 부차라티는 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들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받아들였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쌓여 있는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아바키오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귀신이든 환각이든 내가 아직 모르는 무언가든 상관없었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에도 자신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지금처럼 의자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자리를 지키고 있길 바란다. 애초에 죽음이라는 건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명확하게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따지는 일조차 어느 순간 별 의미가 없어진다.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어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맨발이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조금 전 깨진 유리 조각이 신경 쓰였으나 굳이 치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부엌으로 향해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내가 준 커피는 입에 안 맞았나 보네.”
그는 어느새 부엌에 와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의 시선이 손도 대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 남겨둔 잔으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누가 해준 건지도 모르는데 잘도 마시겠군.”
일부러 날을 세웠다. 차라리 적대하는 편이 나았다. 부차라티를 보는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되살아나려는 것들을 억누르기에도 벅찼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정말 부차라티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고 싶지 않았다. 뒤에서 여전하다며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지?”
“알아봤자 뭐해.”
짧고 무심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무언가를 감추려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입가에 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바키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살아생전에도 부차라티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타인의 사정에는 누구보다 귀를 기울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속내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었다. 아바키오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순간에 외로움을 느끼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갑자기 입을 열 리는 없었다.
그래. 네 이름으로 새겨진 묘비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넌 죽은 사람이다.
그건 천년이고 만년이고 달라질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마음을 내어주지 못했다. 누군가를 믿었다가 그 사람이 사라지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도 않았다. 모두가 죽었다고 정의한들 나와 함께 계속 있을 수 있다면 그게 뭐가 상관일까. 갑자기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이 급하게 치밀어 올랐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다급해진 마음으로 뒤를 돌자 푸른 눈동자와 맞부딪혔다. 내 뒤엔 여전히 그가 서 있었다. 암흑 같은 어둠에서도 새파란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맑게 빛나고 있었다. 아바키오는 확인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그 눈을 오래 바라보았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또렷하게 고정했다. 그제야 눈앞에 서 있는 남자가 부차라티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가 왜 돌아왔는지, 무엇이 되어 돌아온 것인지, 앞으로 얼마나 오래 이곳에 머물 수 있는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5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했던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다.
⁕ ⁕ ⁕
레스토랑에는 출장에 간 푸고와 죠르노를 제외한 인원이 모여 있었다. 나란차는 식탁에 놓인 숙제 더미를 보며 연신 투덜거리고 있었고 미스타는 조금 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무료한 얼굴로 포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부차라티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레스토랑은 대대적인 공사를 거쳤다. 처음에는 단순히 평수를 넓히는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막상 벽을 허물고 나니 이것저것 손대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바닥부터 천장, 벽지, 조명, 가구의 배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탈바꿈되었다. 낡은 나무 탁자들은 반질거리는 대리석 테이블로 바뀌었고,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삐걱거리던 의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벽에는 값이 제법 나가 보이는 그림들이 걸렸다. 메뉴판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한때 아무렇지 않게 주문했던 음식들은 어느 날 갑자기 메뉴판에서 사라져 있기도 했다. 없어지면 다른 것이 들어온다. 사람이 떠나면 또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운다. 낡은 것들은 당연하게 버려진 뒤 새것으로 바뀐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을 찾는 쪽이 오히려 더 어려웠다. 아바키오는 문득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선을 조금 옆으로 돌리자 부차라티가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바키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 부차라티만 변하지 않았다. 5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부차라티는 잠시 낯선 공간을 구경하더니 이내 벽에 등을 기댄 채 아바키오 일행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진짜 모르겠네!”
숙제를 손에 쥔 채 투덜거리던 나란차가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란차가 걸음을 옮기는 그 방향에는 부차라티가 서 있었다. 아바키오는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을 주었다. 곧 저 둘의 어깨가 부딪힐 것 같았지만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란차는 그대로 부차라티를 지나갔다. 정확히는 통과했다. 어깨가 맞닿아야 할 순간 두 사람의 형태가 겹쳐졌다.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부차라티의 몸에서 빠져나온 나란차가 멀쩡히 카운터쪽으로 향했다.
부차라티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양 태연했다. 나란차가 자신을 통과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아바키오의 반응이 더 흥미롭다는 듯이 이쪽을 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아바키오는 무심코 부차라티가 있는 쪽을 빤히 바라봤다.
“거기 뭐라도 있어?”
미스타가 아바키오의 시선이 쏠린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스타의 시선이 정확히 부차라티를 훑고 있었다. 부차라티 역시 자신에게 향한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흠칫 놀란 아바키오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흐음...”
미스타는 어딘가 이상한 걸 눈치챈 듯이 바라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잔뜩 긴장한 몸이 풀리며 작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5년 만에 갑자기 나타난 것도 수상한 부분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왜 모두가 아니라 자신에게만 보이는가. 나에게만 보인다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다. 단순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돌아온 것이라면 굳이 자신에게만 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애초에 부차라티가 죽어서까지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승에 돌아올 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런 의문에 도달하자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불길함이 서서히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아마 부차라티 역시 자신이 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아바키오는 손가락으로 와인잔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문질렀다. 물어볼까 싶다가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궁금하다고 한들 한때 자신의 상관이었던 사람에게 대뜸 찾아온 목적부터 밝히라고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부차라티가 지금 말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아바키오는 슬쩍 다시 부차라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차라티는 아직까지도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5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5년 동안 모든 것이 변해버린 레스토랑을 바라보면서.
비가 내렸다.
처음엔 창문을 긁는 정도였던 빗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집 전체를 집어삼킬 듯 거세졌다. 요란한 빗소리에 아바키오는 소파 위에서 몸을 뒤척이다 눈을 떴다. 아까까지만 해도 밝았던 하늘이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다. 벌떡 몸을 일으켜 시계를 확인해 보니 열한 시 언저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베란다 쪽에 서 있는 사람의 형체를 발견했다. 희미한 어둠 너머로 부차라티가 베란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쏟아지는 비를 피할 생각도 없이 다 맞고 있었다. 저러다 감기에 걸리겠군. 그렇게 생각한 뒤 아바키오는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귀신도 감기에 걸리나. 보아하니 일부러 우산을 안 쓴 모양이다. 비가 저렇게 세차게 내리는데도 옷자락 하나 몸에 달라붙지 않았다. 오늘 나란차가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들었다가 부차라티의 몸을 통과해버렸던 광경이 잠깐 머리를 스쳤다. 비도 통과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바키오는 현관 옆에 세워둔 우산을 집어 들었다. 고작해야 거실에서 베란다까지 몇 걸음이면 되는 거리였다. 그런데도 그 몇 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일 같았다. 몇십 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그가 서 있는데도 함께했던 시간만은 이상하리만치 먼 과거에 박혀 있는 기분이었다. 발바닥이 바닥에 붙어버린 것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단둘이 있었던 게 언제였더라. 아바키오는 우산을 쥔 채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지”
목소리가 생각보다 거칠게 나왔다. 아바키오는 괜히 숨을 한 번 삼켰다. 급하게 걸어온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숨이 차 있었다.
“비오는 걸 보고 있었어.”
부차라티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눈앞을 가득 메운 빗줄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
그에게 우산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정적을 감추려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아바키오는 손에 들려있던 우산을 활짝 펼쳐 부차라티의 머리 위로 우산을 기울였다. 우산으로 둘을 가리기엔 조금 먼 거리였기에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이렇게 가까이서 부차라티의 얼굴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기억 속에 남아있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눈가에서부터 콧날과 입술까지 천천히 눈으로 좇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으니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갑자기 부차라티가 휙 고개를 돌려 아바키오를 바라봤다. 아바키오는 황급히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봤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부차라티는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 다짐한 눈빛으로 아바키오를 바라봤다. 드디어 이곳에 온 이유를 밝히는 것이리라 내심 직감했다.
“아바키오”
“응”
“죽지 마.”
정말 뜬금없다. 고작 두 마디였다. 거센 빗소리에 섞여 자칫하면 흘려들을 수도 있을 만큼 짧고 단순한 문장. 죽음이라는 것은 이제 특별히 낯선 말도 아니었다. 너무 오래 곁에 두고 살아서 이제는 굳이 의식할 필요조차 없는 것에 가까웠다. 총알 한 발이 머리를 꿰뚫든 어딘지 모를 골목 바닥에서 피를 흘리다 눈을 감든 언제 어디에서 끝나도 이상할 것 없는 인생이었다. 먼 훗날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인생이었다. 그러니 마지막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아바키오는 천천히 부차라티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가끔 잔인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얼굴로 가장 잔인한 짓을 했다. 손을 내밀어 그 손을 잡게 만들어놓고, 갈 곳도 없던 인간에게 따라갈 자리 하나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는 죽지도 말란다. 당신이 없는 곳에서 대체 얼마나 더 살아 있어야 하지. 십 년? 이십 년? 그보다 더?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기다리고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는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그저 죽지 말라고 한다. 아바키오는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죽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생각하고 나니 우스울 정도로 간단했다. 내 목숨인데도 정작 자신에게는 결정권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언제 끝나든 상관없었던 것이 부차라티의 입에서 흘러나온 두 마디 때문에 갑자기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 사실이 묘했던 동시에 조금 황홀했다.
아, 나는 정말 이 사람에게 어디까지 내어줄 수 있는 걸까. 목숨 정도로 끝나는 걸까 아니면 그것보다 더한 것도 가능할까. 살라고 하면 살고.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리고. 어쩌면 자신은 오래전부터 그런 식으로 부차라티의 명령을 따르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지도 몰랐다. 죽음은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당신이 죽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 한마디가 목에 걸린 무거운 사슬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조여왔으면 했다. 숨이 막힐 만큼 단단히 묶여서 언젠가 자신이 그 말을 잊어버리려고 해도 절대로 잊을 수 없게.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부차라티에게 구원받고 싶은 게 아니다. 지금 그에게 원하는 건 훨씬 볼썽사나운 것이었다. 이 사람이 제 인생에 계속 관여해주기를 바랐다. 살아라. 가지 마라. 기다려라. 곁에 있어라. 그 어떤 명령이든 좋았다. 자신의 남은 생을 멋대로 정해버리고 그 끝에 당신이 있었으면 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살아줄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아바키오는 한참이 지나서야 전혀 다른 것을 물었다.
“내일도 여기 있을건가?”
“아마.”
아마. 그 불확실한 대답 하나를 붙잡고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내일도. 그 말이면 됐다. 내일도 당신을 볼 수 있다면 그다음 날도 물으면 된다. 그다음 날이 오면 또 그다음 날을. 그렇게 이어 붙인다고 해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만 그때까지는 당신이 내게 죽지 말라고 했으니.
⁕ ⁕ ⁕
부차라티는 어느 날인가부터 고향의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돌아가 보고 싶은 마음 정도야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들은 날부터 어딘가 불편했다. 정확히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안 좋은 결말을 예상하듯 이상하게 꺼림직한 기분이었다. 아바키오는 며칠이 지나서야 차 열쇠를 집어 들었다. 두 사람은 가는 내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출발했는데 고향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벌써 햇빛이 어느새 기울고 있었다. 아바키오는 평소보다 더 빠르게 차를 몰았다. 이유 없이 초조해졌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할 것 같았다. 해가 져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생길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반면 부차라티는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편안해 보였다. 바다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들어오기 시작하자 창문을 내렸다. 늦은 오후의 바람이 창문으로 밀려 들어와 검은 머리칼을 흩뜨렸다. 그 모습을 곁눈질하던 아바키오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 보이는군.”
“응.”
“그렇게 오고 싶었나?”
부차라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다 한참 뒤에야 말했다.
“한번쯤은 다시 오고 싶었어.”
그 말을 끝으로 부차라티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바다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해가 수평선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저물어가는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낸 바다는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파도가 잘게 부서질 때마다 수천 개의 금속 조각을 뿌려놓은 것처럼 번쩍였다. 차가 완전히 멈추자마자 부차라티가 문을 열었다.
“부차라티.”
대답이 없었다. 그는 곧장 바다를 향해 걸었다. 처음에는 아바키오도 별생각 없이 따라 내렸다. 그런데 모래사장을 지나 물가에 닿은 뒤에도 부차라티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파도가 부차라티의 허리까지 차올랐다.
“부차라티!”
조금 더 크게 불렀다.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 안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오랫동안 집을 비웠던 사람이 제 집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처럼 익숙해 보였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아바키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제야 부차라티가 걸음을 멈췄다. 물은 이미 가슴 가까이 차 있었다. 몇 차례 큰 파도가 지나갔지만 옷은 젖지 않았다. 파도가 그의 몸을 지나칠 때마다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통과했다.
“이제 내가 여기서 할 일은 없는 것 같아.”
거센 파도 때문에 목소리가 군데군데 끊어져 들렸다. 아바키오가 다급하게 제 몸을 바닷속으로 넣었다.
“그럼 나도 같이 가.”
“죽기 싫으면 돌아가 아바키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더 깊이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허벅지를 지나고 있었다. 옷이 물을 먹어 온몸에 달라붙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갔지만 부차라티와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돌아가.”
“싫어.”
“아바키오.”
“당신이 죽지 말라며. 살라고 했잖아. 당신이 없는데 내가 왜.”
그 뒤의 말을 끝내지 못했다.
왜 살아야 하지.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왠지 그가 슬퍼할 것 같았다. 그날 죽지 말라고 말하던 그 눈빛이 생각났다. 부차라티는 한동안 아바키오를 바라보았다. 죽지 말라고 했던 사람은 정작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남겨지는 쪽의 사정 같은 것은 조금도 모르는 사람처럼. 아바키오는 물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부차라티는 한동안 그런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처음부터 이런 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 특유의 체념 같은 것이 희미하게 어려 있었다.
“그날 왜 그런 말을 했어...”
부차라티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센 파도가 두 사람 사이로 지나갔다. 파도가 부차라티의 몸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하는 동안 아바키오의 몸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그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곳에 속한 존재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선명해졌다.
“넌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걸 누가 정했는데.”
“네가 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그럼 내 일도 당신이 정하지 마.”
부차라티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살아 있을 때라면 여기서 그만했을지도 몰랐다. 부차라티가 말하지 않는 데에는 언제나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믿었으니까.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신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입을 다문다면 정말로 영영 물을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았다.
“이곳에 온 이유가 뭐지?”
부차라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해는 이미 수평선 끝자락에 걸려 있었고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했던 빛을 잃어가는 바다에는 서서히 저녁의 푸른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아바키오는 그 침묵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물을 헤쳤다. 부차라티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한 걸음씩 다가가다 보니 물은 어느새 허리 가까이 올라와 있었다. 이상한 것은 부차라티가 더는 그를 말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하듯 선을 긋던 사람이 정작 자신을 따라 깊은 곳까지 들어오는데도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바키오가 여기까지 오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그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아바키오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당신, 처음부터 내가 따라오길 기다렸나?”
부차라티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 하나로 충분했다. 아바키오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검푸른 물이 허리께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서 죽이려는 속셈인가?”
부차라티의 눈이 아바키오를 향했다. 저물어가는 빛 아래에서도 그 눈만큼은 이상하리만치 푸르게 보였다.
“이 바다에서 너는 나를 잊게 될 거야.”
“.....뭐?”
당황스러운 소리였지만 이상하게도 한 번에 이해가 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석연치 않았던 일들이 하나씩 전혀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5년 만에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났던 것. 느닷없이 고향의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던 것. 그리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걸어 들어온 것. 처음에는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였던 일들이 이제 와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가지런히 이어졌다. 아바키오는 천천히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검푸른 물이 허리께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날 데려온 건가?”
부차라티는 대답하지 않았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배신감이었다. 오래 믿었던 사람에게 뒤늦게 속았다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의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종류의 배신감.
“살라며.”
아바키오가 웃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소리가 목에서 새어 나왔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는 게 그렇게 보기 싫었어?”
“그런 뜻이 아니야.”
처음으로 부차라티의 표정이 흔들렸다.
“넌 내가 죽은 날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5년이란 시간을 보냈잖아.”
“그래서 너를 잊으라고?”
“그래야 네 시간이 다시 흐를 것 같았어.”
“그걸 왜 당신이 정해.”
“미안해.”
“사과하지 마.”
아바키오가 한 걸음 다가갔다.
“당신이 멋대로 정해놓고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하지 마.”
부차라티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내가 다 잊어버리면 다시 찾아. 처음부터 다시 말해. 이름도,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도, 내가 당신을 어떻게 따라다녔는지도 전부. 그러면 내가 다시 기억할 테니까.”
아바키오는 웃으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입꼬리가 올라가기는커녕 미세하게 떨렸다. 당신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 내가 당신을 만났다는 것. 당신이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 그 목소리를 들었고 그 뒤를 걸었고 한 번쯤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는 것. 그 기억들만 붙들고 있으면 평생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와 돌아선다고 해서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난 당신을 잊지 않아.”
부차라티가 아주 슬픈 얼굴로 작게 웃었다.
“그게 너한테 너무 오래 남을까 봐 그러는 거야.”
“평생 남으라고 해. 상관없어.”
바람이 불었다. 검푸른 물결이 두 사람 사이에서 몇 번이고 솟았다 가라앉았다. 바닷물이 허리께에서 출렁였다. 부차라티가 아주 오래 아바키오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야말로 아바키오의 얼굴을 기억해두어야 하는 사람처럼. 젖은 은빛 머리카락에서 시작해 찌푸려진 눈썹과 눈, 굳게 다문 입술까지 천천히 시선에 담았다. 그 눈길이 다정하고 따뜻해서 아바키오는 차라리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르든, 평소처럼 단호한 얼굴로 자신을 꾸짖든. 그러면 적어도 이 순간이 작별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테니까.
“내 명령이야.”
명령. 그 단어에 아바키오의 몸이 굳었다.
그 안에 담긴 뜻은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상대의 의사를 묻지 않고 그저 따르기를 요구하는 말. 아바키오는 본래 그런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남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것도 질색이었다. 그런데도 부차라티의 입에서 나온 명령만큼은 싫지 않았다. 적어도 그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앞을 보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한때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했던 아바키오에게 그것은 기묘한 종류의 안도였다. 그래서 웬만한 것은 다 들을 수 있었다. 설령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라 해도 끝내는 그에게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이라고 했다. 앞으로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명령. 부차라티가 자신에게 내리는 생애 마지막 명령이 자신에게서 떼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나를 잊어.”
순간 이상할 만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 네 글자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잔인한 인간.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끝까지 잔인한 인간이었다. 사람 하나를 겨우 살아 있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는 자신이 그 삶에 남긴 흔적까지 거두어가겠다고 한다. 망가진 채로도 누군가의 곁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였는데. 그 모든 것을 일궈놓고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살라고 한다. 차라리 미워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형편없는 인간이었다고, 자신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아무 의미 없었다고 믿을 수 있게 조금이라도 못되게 굴어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미움에 기대어 잊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미워할 구석 하나 남겨주지 않은 채 떠나는 사람을 대체 무슨 수로 잊으란 말인가.
당신은 모른다. 내가 당신의 목소리를 얼마나 오래 기억해왔는지.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서도 비슷한 음성 하나만 들리면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는 것을. 비슷한 차림을 한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닳는다고들 해서 아바키오는 억지로 닳지 못하게 했다. 얼굴을 되새기고, 목소리를 되새기고, 이름을 되새겼다. 기억이 조금이라도 흐려지는 날이면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처음부터 다시 떠올렸다. 그것이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의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한다.
“아바키오.”
“그 말 당장 취소하고... 명령은 못 들은 걸로 하지”
“내 명령을 어겼구나”
아바키오가 한 걸음 다가갔다.
“나는 당신을... ”
사랑해.
그 순간 아바키오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부차라티는 없었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빛이 번쩍인 것도 아니고, 몸이 산산이 흩어진 것도 아니었다. 눈꺼풀이 내려왔다 다시 올라간 그 짧은 순간, 조금 전까지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는 검푸른 저녁 바다만이 출렁이고 있었다. 아바키오는 한동안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차라티?"
대답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곳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는 차가운 바닷물밖에 닿지 않았다. 한 번 더 불렀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어디에서도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아바키오는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양쪽을 둘러봐도 없었다.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바다 어디에도 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너무나 선명하게 존재하던 사람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아바키오는 본능적으로 그가 있던 방향으로 움직였다. 물살이 몸을 밀어냈다. 발밑의 모래가 파도에 쓸려나가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다. 조금 전까지 그 이름의 주인이 바로 앞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듯, 몇 번이고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가 파도에 묻힐 때마다 더욱 크게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아바키오는 물속을 철벅이며 마구잡이로 헤집었다.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파도가 들이칠 때마다 몸이 휘청였고 차가운 물이 얼굴을 덮었다. 몸의 체온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하여 그의 이름을 불렀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듭 밀려드는 물결 속에서 정신은 점점 흐릿해졌다. 몸에 힘이 빠지고 차가운 바닷물과 저녁의 어둠이 뒤섞여 시야를 삼켰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불렀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아바키오는 한동안 자신이 어디에 누워 있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몸을 조금 움직이자 바닷물에 젖은 옷이 차갑게 피부에 달라붙었다. 온몸이 무겁고 머릿속은 이상하리만치 멍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바다를 바라보았다. 왜 여기 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차를 몰고 여기까지 온 건 기억났다. 그런데 누구와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와 이곳에 왔을까? 무디 블루스를 이용해 몇 번이고 계속 돌려봤다. 자신이 왜 물속으로 들어갔는지, 왜 목이 쉬도록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바키오는 왠지 서둘러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근처에 방을 구해 몇 주 더 머물기로 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비가 오는 날에도 매일 바다에 갔다. 가끔은 파도 가까이에 서서 한참 동안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어떤 날에는 이유 없이 화가 났고 어떤 날에는 견딜 수 없이 애틋했다. 어쩌면 지금 누구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누군지도 잘 모르겠지만 몹시 보고 싶었다.
어느 날 마을 가이드가 소수의 관광객을 모아놓고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바키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며 무심코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이곳에는 오래된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바다를 보기 전에 설명을 들어달라는 가이드의 말에 관광객 몇 명이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귀를 기울였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이 바다를 따라 들어가면, 바다가 그 사람의 기억을 가져간다는 내용의 전설입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이곳을 망각의 바다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아바키오의 손가락 사이에서 담뱃재가 떨어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왜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래전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말을 다시 듣는 것처럼 문장의 끝이 이어지기도 전에 다음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관광객들은 신기하다는 듯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바키오도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경치였다. 머릿속 어딘가를 억지로 헤집으면 금방이라도 얼굴 하나가 떠오를 것 같은데, 아무리 애를 써도 손끝에 잡히지 않았다. 기억이라는 것에 정말 형태가 있다면 눈앞까지 떠올랐다가 손을 뻗는 순간 다시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버리는 것 같았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보고 싶었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얼마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지도,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제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바다를 계속 보고 있자 문득 누군가의 눈이 생각났다. 색은 기억나지 않았다. 얼굴도, 이름도,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 눈빛만은 알 것 같았다. 이 바다와 닮아 있었다. 바다를 볼 때마다 그 사람의 눈을 떠올렸던 것 같기도 했다. 그제야 알았다. 이곳에서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누구였는지는 이제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사람의 얼굴도, 목소리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함께했던 시간도 자신이 무엇을 받았고 무엇을 주었는지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바키오는 피우던 담배를 모래에 비벼 껐다. 그날 오후 아바키오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